2017년 7월 30일 일요일

'군함도'(軍艦島, 군칸지마) -하시마 섬(일본어: 端島 )



'군함도'란?

하시마 섬(일본어: 端島 )은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이다. 섬의 모습이 마치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칸지마(軍艦島,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까지 탄광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폐산 이후 주민들이 이주하였으며, 섬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후 2015년 6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석탄 노동을 시켰으며,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하였으나, 한국의 반대로 지정에 난항을 겪었다. 강제 노역에 대해 명시하는 조건을 통해 간신히 등재하였으나, 직후 태도를 바꾸어 강제 노동의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19세기에 석탄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1890년부터 미쓰비시 재벌의 소유가 되었다. 석탄 채굴을 위해 주위를 매립하였고 다이쇼 시대 이후에는 철근 콘크리트조의 주택이 건설되었다. 해상에서 본 실루엣이 마치 일본 해군의 전함을 닮아 군칸지마로 불려왔다.
20세기

1916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조의 집합주택 '30호동'이 건설되었다. 5년 후인 1921년에 나가사키 신문도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설중이었던 일본 해군의 전함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군칸지마라고 불렀기 때문에, 군칸지마라는 통칭은 다이쇼 시대 무렵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아직 철근 콘크리트조의 고층 아파트는 적었고, 대부분은 목조 단층집이나 2층집이었다.

태평양 전쟁이후 1940년 부터 1945년 까지 조선인 약 600명이 강제동원 되었다. 하시마 탄광에서는 좋은 품질의 강점탄이 채굴되어, 인접한 다카시마 탄광과 더불어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해온 탄광 중 하나였다. 석탄 출탄량이 전성기를 맞았던 1941년에는 약 41만 톤을 출탄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였다. 석탄을 생산할 인구수가 부족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실시된 '국가 총동원법'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씩 탄광에서 노역을 했다. 인구가 전성기를 맞았던 1960년에는 5,267명이 하시마 섬에 거주하여, 인구 밀도는 제곱 킬로미터 당 83,600명으로 도쿄 23구의 9배 이상에 달했다. 탄광 시설, 주택 외에 초중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등이 있어 섬 안은 완벽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화장장, 장지, 충분한 넓이와 시설이 있는 공원은 섬 안에 없어서, 하시마 섬과 다카시마 사이에 있는 나카노시마에 건설되었다.


1960년 이후에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감에 따라 쇠퇴해갔다. 1965년에 미츠세 구역의 신광이 개발되어 일시기 회복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의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 폐산하였다. 폐산시에는 약 2,000명까지 줄었던 주민은 4월 20일까지 모두 섬을 떠나, 하시마 섬은 무인도가 되었다. 다카시마 광업소의 잔무정리 등 탄광 관련 시설의 해체 작업은 1974년 말까지 이어졌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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